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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책

설득의 심리학 - part 2 상호성의 원칙 _ 받는대로 갚아야 한다.

by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2024. 2. 17.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part 2 상호성의 원칙 _ 받는대로 갚아야 한다. 

 

모든 빚을 갚아라, 마치 신에게 빚진 것처럼._ 랄프 왈도 에머슨

 

몇 년 전 한 대학 교수가 간단한 실험을 실시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무작위로 선택한 다음 그들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발송한 것이다. 모종의 반응을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로 벌어진 결과는 깜짝 놀랄 정도 였다. 교수를 만나본 적이 없음은 물론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 로부터 엄청난 양의 답장이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답장을 보내온 사람들 중 정체불명인 교수에게 신원을 묻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저 그들 은 카드를 받으면 무조건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자동화된 반응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Kunz & Woolcolt, 1976.

 

비록 실험 규모는 작았지만 이 연구는 가장 강력한 설득의 무기 중 하 나인 '상호성의 원칙'이 작동하는 방식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상호성의 원칙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한테 뭔가를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 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누군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 면 우리도 호의로 갚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을 받으면 우리도 상대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선물을 해야 하며, 누군가 우리를 파티에 초대하면 우리도 파티를 열어 상대를 초대해야 한다. 상호성의 원칙은 타인의 호의나 선물, 초대 등이 미래에 우리가 갚아야 할 빛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런 부채의식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당신에게 갚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ch ocal 라는 말이 감사합니다(thank yal 와 동의어로 쓰 일 정도이며, 이런 현상은 영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권(예를 들어 감사합니 다라는 의미의 포루투갈어는 'obrigado이다)도 마찬가지다. 고맙다는 뜻을 지닌 일본어 '스미마셍+2초반/'은 미래에 자신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 미를 함축하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뜻이다.

 

부채의식을 수반하는 상호성이라는 강력한 특징은 인류 문화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사회학자 앨빈 굴드너 Avin couldner, 1960와 동료 연구진은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모든 인간 사회가 상호성의 원칙을 따르고 있음 을 밝혀낸 바 있다.' 상호성의 원칙은 모든 사회에 널리 퍼져 있으며 거 의 모든 종류의 교환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상호성의 원칙에 서 비롯된 고도의 부채 시스템은 인류 문명의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 다. 저명한 인류학자 리처드 리키 Rchard Lakey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핵 심을 상호성의 체계에서 찾았다. 그는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 었던 것은 선조들이 '의무감으로 이뤄진 명예로운 네트워크 안에서'식 량과 기술을 공유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Lakey & Lowin, 10%, 문화인류학자들은 이 부채의 그물망을 인류만의 독특한 적용 메커 니즘으로 평가하며, 각 개인을 대단히 효율적인 집단의 일원으로 만드 는 분업,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 상호의존성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Ridley, 1997; Tger & Fox, 1989 .

 

문화인류학자인 타이거와 폭스는 사회 발전을 이루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가 바로 미래지향적 의무감이라고 주장한다 Ridley, 1997; Tger & Fox,

1980. 인간 사회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미래지향적 의무감을 공유함으로 써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는 것이다. 즉, 미래지향적 의무감이 광범위하 게 퍼져 있고 채택돼 있는 인간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안심하고 다른 사 람에게 음식이나 에너지, 보살핌 등의 호의를 기꺼이 베푸는데, 이런 호 의는 나중에 자신에게 호의가 필요할 때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렇듯 원조와 무상제공, 방어와 거래 등의 세련된 협력 체계가 가능해지면서 사회 전체에 엄청난 이익이 발생했 다. 그러므로 인류 문명에 이토록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준 상호성의 원칙이 사회화 과정을 통해 우리 내면에 깊이 새겨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의무감이 미래지향적이기는 하지만 지속 기간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비교적 작은 호의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답하려는 마음이 약해 진다 Burger ct al, 1997: Flymn, 2002. 그러나 기억에 남을 만한 대단한 선물을 받 았을 때에는 의무감이 상당히 오래 지속된다. 상호의무감이 얼마나 강 력하게 오랫동안 지속되는지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멕시 코와 에티오피아가 주고받은 5,000달러의 구호자금과 관련한 놀라운 이 야기다.

1985년 에티오피아는 극심한 궁핍과 혼란으로 국제 사회에 원 조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경제는 무너졌고 수년에 걸친 가뭄과 내전으로 식량 수급도 악화됐다. 기아와 질병으로 국민들이 수천 명씩 죽어나갔다. 이렇듯 도움이 절실한 에티오피아에 멕시코가 5,000달러 상당의 구호자금을 보냈다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터였다. 그러나 내가 읽은 신문 기사는 구호자금 전달 방향이 정반대였다는 내용이었 다. 에티오피아 적십자 회원들이 같은 해에 발생한 멕시코시티의 지진 피해자들에게 5,000달러를 보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어떤 행동 때문에 혼란에 빠질 때마다 더 깊이 조사해보고 싶은 욕망은 개인적인 고통인 동시에 직업적인 축복이라 할 수 있다. 다 행히 에티오피아의 행동에 나만큼이나 당황한 어느 기자가 에티오피아 측에 해명을 요청했다.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 상호성의 원칙이 얼마나 유효한지 여실히 증명해줬다.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 한 상황인데도 굳이 그 돈을 멕시코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1935 년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의 침공을 당했을 때 멕시코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에티오피아 적십자, 1985). 답변을 듣고 나니 여전 히 놀랍긴 했지만 궁금증은 풀렸다. 상호성의 원칙이 문화적 차이와 지 리적 거리, 극심한 기근, 오랜 세월, 자국의 절박한 상황 등을 모두 초월 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상호성에서 비롯한 의무감이 반세기가 지난 후 에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뒀다.

50년 동안 이어진 의무감이 에티오피아 문화만의 독특한 특징으로 설 명할 수 있는 예외적인 현상이라면, 역시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2007년 5월 27일 워싱턴 DC에서 정부 관리로 활동하 는 크리스티안 크로너 Chistan Kroner가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허 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재해 현장에 정부가 시기적절하게 대 처한 데 자부심을 보이며, 홍수를 당한 뉴울리언스 시와 그 밖의 많은 재해 현장에 펌프와 배, 헬기, 기술자, 구호 물품 등이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됐는지 자세히 설명했다Hunet, 2007. 이건 말도 되지 않는 다. 비극적인 재난 앞에서 미 연방정부가 얼마나 서툴고 부적절한 대처 로 일관했는지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가?

 

한 예로 루이지애나 주민들을 원조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정부가 자 랑해 마지않던 '로드 홈 Road Home' 프로그램은 당시 시작한 지 여덟 달이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아직 전체 원조 요청 규모의 80퍼센트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크로너라는 사람은 뻔뻔하기로 소문난 정치 가들 중에서도 유난히 더 후안무치한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 다. 사실 크로너는 자국 정부의 노고에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입장에 있었 는데, 그는 미국 정부 관리가 아니라 미국 주재 네덜란드 대사였기 때문 이다. 그는 카트리나로 파괴된 미국 멕시코만 연안에 네덜란드에서 제 공한 원조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가지 문제의 답은 구했지만 또 하나의 아리송한 문제가 남는다. 왜 하필 네덜란드일까? 다른 나라들도 태풍 직후 원조를 제공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처럼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헌신을 보여준 국가는 찾아보기 어 려웠다. 당시 크로너 대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 그리고 루이지 애나 주민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네덜란드 정부가 홍수 피해 주민들에게 장기적인 원조를 제 공할 계획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토록 특별한 원조를 제공할 수밖에 없 는 설득력 있는 이유도 제시했다. 50년 전 네덜란드가 뉴올리언스에 신 세를 진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1953년 1월 31일 네덜란드에 무자비한 강풍이 불어닥쳐 총 25만 에이커의 육지에 바닷물이 범람하면서 제방 과 부두, 가옥 수천 채가 파괴되고 2,000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네덜란드 관리들은 곧 뉴올리언스 지방정부에 원조와 기술 지원을 요청했 고, 당시 뉴올리언스 정부의 지원으로 건설한 새로운 배수 시스템 덕분 에 이후 유사한 홍수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왜 뉴올리언스에 외국 정부에서 제공한 수준의 지원을 제공하지 못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아마도 미국 정부는 뉴올리언스에 별로 신세진 일이 없 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만약 그렇다면 미국 정부 관리들은 이제 뉴올리언스 주민들 역시 미 국 정부에 대해 유권자, 자원봉사자, 기부자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깝게 도 준법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가 별로 없다고 생각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

 

시인 W. H. 오든w.H. Auden이 노래했듯이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 어린아이도 알 만한 사실을. / 악한 일을 당한 사람은 / 악한 일로 갚는 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보면 2007년에 주 방위군과 주 경찰, 시 경 찰까지 인원을 보강해 끊임없이 순찰을 했는데도 뉴올리언스의 살인사 건 발생률이 30퍼센트나 급증하며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미국에서 가 장 유혈이 남자한 도시가 돼버린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다소 일반화 시켜 말하자면, 상호성의 원칙은 자신이 보여준 행동의 결과가 좋든 나 쁘든 결국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